Diary2008. 5. 23. 02:18

간만에 너무나 재미있게 본 경기네요. 축구에서 생길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일어난거 같습니다.

#1. 편파 판정

루보스 미첼 심판은 05-06 챔피언스 리그 첼시 vs 리버풀의 4강전에서 골대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갈라스(이 때는 첼시에 있었습니다.)가 걷어낸 공을 골로 인정해서 리버풀의 결승행을 도왔던 인물로 유명합니다. 그냥 첼시를 싫어한다느니, 로만 구단주랑 사이가 안좋다느니 하는 여러 얘기가 있는데 사실 여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튼 맨유에 대한 편파 판정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맨유에게 더 판정이 우호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나 몸싸움이나 반칙에 관한 부분(이건 양팀 다 워낙 거칠어서...)보다는 공이 경기장 밖으로 나간 상황에서 어느 쪽 공이냐를 선언하는 부분에서 위력을 발휘한 것 같습니다.


더 큰 문제로 보였던 것은 반칙이냐 / 아니냐의 판단이 오락가락했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자신히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은 반칙으로 선언을 안하는 원칙을 가진 것인지.. 어떤때는 살짝 넘어져도 불고 어떤때는 팔에 찍히고 난리가 나도 안불고 하더군요 -_-

#2. 그라운드

경기가 열린 루즈니키 경기장은 원래 추운 날씨 때문에 인조 잔디가 깔려있었다고 합니다. 이번 챔피언스 리그 때문에 슬로바키아에서 4억얼마인가 주고 잔디를 사와서 깔았다는데 이게 약 보름정도밖에 안됐습니다. -_- 안그래도 턴 동작에서 의아할 정도로 자주 넘어지던 선수들이 비가 오고 체력마저 떨어지니까 못볼꼴을 연출하더군요 ㅠㅠ 경기 시간이 밤 11시인것도 원인이 될 수 있겠구요.

#3. 하그리브스

우리나라 사람들을 분노에 차게 만든 바로 그 장면... 전 맨 처음에 하그리브스가 센터도 아니고 우측 수비도 아니고 왜 저기에 있나 했는데 너무 잘하더군요. 밀리지 않는 뚝심과 훌륭한 볼 키핑력, 정확한 크로스, 게다가 무서울 정도의 근성까지... 퍼거슨이 저 자리에 하그리브스 넣은게 이해가 됩니다. 에브라와 더불어 이 경기에서 양 팀 통틀어도 최고 수준의 활약을 했다고 봅니다.
(근데 박지성이 안나왔다고 아쉬워하거나 화내는건 그럴 수 있는데 배신당했다느니, 단물만 빼먹었다느니, 퍼거슨은 냉혈한이라느니 하는 평가가 왜 나오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특히 언론들이 앞서서 그러고 있는게 어처구니가 없네요.)


호날두는 평소에 첼시만나면 보이지도 않더니 이 날은 적절한 자리 배치에 힘입어 골(물론 호날두 옆에 있어야 할 마크맨이 안보이긴 하는군요. 힘내요 에시앙)도 기록하고,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저 잔디 상태에서도 열심히 발 휘적휘적하면서 재밌는 볼거리 많이 만들어주더군요. 반대로 테베즈와 루니의 플레이는 실망스러 웠습니다. 루니는 전반에 맨유가 약간 우세를 점할때 반짝하고는 경기 내내 보이지 않았으며 테베즈는 여기저기 보이기는 하는데 치고 들어갈지, 패스를 할지 머뭇거리다가 얼토당토않은 패스를 하거나 무난히 뺏기는 경우가 많더군요.

#4. 체흐

첼시는 후반 내내 거의 하프 코트 경기를 했던 만큼 모든 선수가 훌륭한 활약을 해주었습니다. 굳이 누가 제일 잘했느니 하는걸 뽑을 필요가 없을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제일 훌륭했던 선수 것은 체흐 골키퍼라고 봅니다.

(유니폼 색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하긴 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첫 골을 넣고 기세를 몰아 주도권을 잡고 공격을 몰아치는 동안 생긴 찬스들을 너무나 안정적으로 막아주었으며, PK에서도 먼저 한 번을 막아내서 (사실 막은건 반데사르나 체흐나 똑같이 1번...) 심리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존 테리와 램파드는 시종 일관 안정적인 플레이를 주도 해 주었으며, 에시앙이 조금 불안정했던 것을 빼면 마케렐레(우와 벌써 35세..)와 애슐리 콜, 카르발류 모두 후반 내내 맨유가 도저히 전진을 못하게 완벽하게 틀어막았습니다. 반대로 조금 아쉬운 선수는 조 콜과 발락입니다. 조 콜은 수비 상황에서 커버도 훌륭했고 활동량도 많았지만 사실 그 이상의 플레이를 해 줬어야 한다고 봅니다. 에브라에게 너무 무난하게 수비를 당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발락은 요즘 기세를 타서 그런지 중앙에서 충분히 짧은 패스로 풀어 나갈 수 있는 상황임에도 중거리 슛에 너무 욕심을 부린게 아닌가 싶습니다.

#5. 첼시 유니폼
 


예쁘긴한데 등에 이름 써져있는 폰트가 너무 귀여워서 볼때마다 웃게되더군요. 여중생들이 좋아할만한 팬시 상품에 많이 쓰일 것 같은 폰트... 그리고 골키퍼 유니폼 색은 대체 왜 자꾸 형광 계열을 쓰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긴 세리에A 에서는 심판이 저런 색 옷을 입고 다니곤 하더군요.

#6. 부상

전 스콜스가 그냥 나갈 줄 알았는데 99년도에 결승전에 뛰지 못한 한 풀이를 하는지 교체 될 때 까지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브라운과 함께 첫 골도 만들어냈구요. 자세히 잡히지는 않았지만 하그리브스도 출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니도 부상당해서 거미줄을 쳤습니다.(저게 뭐지 근데...) 우승 세레모니 할 때 보니 머리에 땜빵 있는 애 같더군요.

#7. 아브라함 그랜트 감독

전 아무리 봐도 이 분은 마피아라든지 악마로 밖에 안보여요... 웃는 걸 본적도 없지만 웃어도 무서울 것 같네요.

#8. 싸움
(드록바를 망하게 한 한방)

무슨 연유에서였는지 모르지만(아마도 통상적인 신경전이 말다툼으로 발전한게 아닐까) 퇴장을 당하기에 충분한 행위였다고 보입니다. 사실 저는 저걸 보고 시원하게 때리지도 못하고 살짝치고 퇴장당해서 아쉽겠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9. 승부차기

무난히 진행되던 승부차기의 균형을 깬 것은 바로 호날두였습니다. 오오 마라도나도 그랬고 호마리우도 그랬듯이 스타들은 승부차기를 조지는게 이어지는건가 싶었습니다. 본인 심정을 이해하려 해봤지만 표정이 너무 다양해서 오히려 웃음이 나더군요. 전 이대로 첼시가 이기는 줄 알았습니다.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순간 등장한 존 테리의 포스를 보곤 여기서 끝나겠구나 생각했거든요.


근데 경기 내내 지독하게 맞추었던 골대를 또 맞추는게 아닙니까 ㅠㅠ 결국 5번의 킥으로는 승부를 내지 못하고 승부차기마저도 연장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한번만 실패를 하면 바로 패배로 연결되는 상황, 연장 후반 종료 직전에 키커 전용으로 투입 된 안데르손은 킥을 성공시켰고, 칼루 역시 침착하게 골을 성공시켰습니다. 다음 키커로는 긱스 영감님이 나섰습니다. 경험이 많다보니 이런데서 실수하지는 않을거라고 생각 한 대로 성공을 시켰습니다. 첼시의 다음 키커는 방랑자 아넬카...


이 불안한 표정 보십시오... 내 차례 전에 끝났으면하고 바란 기색이 너무나도 역력합니다...


결론은 뭐 이렇게 됐음죠.


#10. 발락

레버쿠젠에서 트리플 러너업(리그 / FA컵 / UEFA컵 모두 준우승)을 달성한 바 있는 발락은(아마 이때 베르바토프도 레버쿠젠에 있었을 겁니다. 껄껄...) 월드컵 준우승을 거쳐서 이번 시즌 EPL과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준우승을 기록하며 경이적인 준우승 기록을 이어갔습니다. 디씨에서는 이미 홍진호와 비교되고있더군요.

저는 다음 날 반차를 사용해서 오후 출근하기로하고 시청을 했는데요. 이래저래 문제가 좀 있었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볼거리가 많은 재미난 경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골이 2골 정도 더 터져줬으면 더 재미있었겠지만 두 팀이 워낙 격렬하게 맞부딪쳐서 골이 적어도 지루하지는 않았습니다. UERO2008의 시작까지 당분간 볼 게 없다는 것이 허전하기는 하지만 선수들도 쉬어야 다음 시즌 경기를 할테니 얌전히 기다려야겠습니다.

Posted by Listege